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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의 시대
선데이타임즈 | 승인 2019.01.31 06:28|조회수 : 280

 

인터넷세상 이라고 하는가? 뉴질랜드에 이민 온 1990년대만해도 고국 소식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요즘이야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연결해 영상통화를 통해 서로의 표정까지 살피면서 소식을 주고받지만 그땐 국제전화가 유일한 소통 창구였다. 그것도 비싼 전화요금때문에 그마저 뜸 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TV를 보던 시대에서 인터넷으로 연결이 되고, 인터넷이 모바일인터넷으로 확장되면서 스마트폰시대가 됐다. 이 스마트폰시대를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가야할지 아득하고 난감하고 짜증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활용법익히기도 힘들고 전문용어이해하기도 벅차다. 온갖 정보와 대화가 스마트폰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에 대한 적응도 쉽지않다. 삶의 패러다임이 적극적인 후배가 스마트폰에 대고 ‘실존철학의 선구자’라고 묻자, 즉시 스마트폰 화면 위로 ‘니체’라는 문자가 떠오른다. 어안이 벙벙하다. 대화는 단절되고 문자로 소통되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한다.

인터넷세상은 학교에서, 일터에서, 사무실에서, 회의장에서, 차 속에서, 거리에서, 가정에서, 심지어 밥상머리에서까지 스마트폰에 집중하면서 주위와 단절된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드는 풍경을 가져왔다. 디지털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속도와 변화다. 그 변화의 중심에 핵가족화 개인주의와 함께 도래한 대화의 단절이 있다. 핵가족화 개인주의시대는 종적 횡적관계성이 급속히 약해지는 현상을 초래한다. 당연히 아날로그 세대에겐 디지털세대의 변화가 생소하고 못마땅하다. 그렇더라도 이젠 지식사회의 변화의 대열에 합류할 것인가, 아니면 방관자가되어 변경인으로 머무를 것인가를 결정해야하는 시점에 서있는 것 만은 확실하다. 분명한 것은 인터넷세상의 깊고 광대한 정보와 신속 편리함을 부인하거나 외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끄적거리는 칼럼만 해도 그렇다. 신문사웹사이트에 올랐다 하면 먼 나라에서도 바로 읽는다. 신문이 배달 되지도 않았는데 산 넘고 바다건너 독후감(?)이 날아온다. 거의 모든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취득한다는 생생한 증거다. 종이신문 비극의 과정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차후론 기사도 인터넷으로만 접해야 하는지 염려가 된다.

 인터넷세상은 대화 단절의 시대를 가져오고있다. 소통을 거의 문자로 한다.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기쁘고, 슬프고, 언짢은 일들을 문자로 나눈다. 대화에는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차갑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존경하고, 멸시하는 숨길 수 없는 감정이 살아있다. 사람은 대화를 하면서 서로의 표정을 보게 된다. 표정에는 자율신경의 영향으로 의식하지 않아도 숨길 수 없는 마음의 상태가 들어난다. 사람은 소통이나 교감을 할 때 텍스트나 메시지나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표정으로도 소통을 하는 것이다. 반면에 문자는 가식적이다. 자신의 감정을 완벽하게 숨기거나 가감할 수 있다. 전화기를 통해 느껴지던 분노와 환희의 한숨 소리, 울음소리, 웃음소리도 단절 된지 오래다. 당신이 우리회사의 에이스라고 엄지 척하며 추켜세우던 직장에서 별안간 문자로 해고 통보가 날아온다. 헛바람 불어넣은 가식 때문에 얼굴 마주 대하고 대화하기가 난처한 거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도 이별을 문자로 통보한다. 인터넷시대는 관계의 적절성까지 단절시키고있다.

 경영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그의 저서 <단절의 시대>를 통해 “급변하는 시기에는 기존의 제도와 관습적인 것들이 새로 출발하는 문화와 충돌하는 ‘단절’이라는 것이 찾아오게 마련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때가 새로운 기회다”고 덧붙였다. 그는 단절의 시대를 연속의 시대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경쟁과 즐김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시대는 급변하고있다. 아날로그세대는 스마트폰시대를 짜증낼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사랑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방관자가 아닌 주도자가되어 언어나 문자 그림 기호 따위의 수단을 통해 서로의 의사나 감정 생각을 능동적으로 주고받고 새로운 세대와 경쟁하는 자세를 견지해야한다. 단절의 시대를 연속의 시대로 바꿔놓을 수 있는 기회는 새로운 것에 대한 적응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나는 나를 설득하고있다. <최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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