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일본군 성노예 고발 첫 ‘국제 미투’ 김복동 할머니 별세
뉴스1 | 승인 2019.01.29 05:25|조회수 : 197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28일 오후 별세했다. /뉴스1 DB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28일 오후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정의기억연대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1년여의 암투병 끝에 이날 오후 10시41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김 할머니는 지난 2017년 개봉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모델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26년 경남 양산에서 출생한 김 할머니는 1940년 만 14세의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갔다. 이후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일본군의 침략경로를 따라 끌려다니며 성노예피해를 당했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로 끌려간 지 8년째가 되던 1947년에야 귀향했다.

김 할머니는 이후 1992년부터 국제사회에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공개적으로 처음 고발하며 인권 운동에 힘썼다.

김 할머니는 1992년 8월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증언했고, 1993년 6월에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해 증언했다.

2000년에는 일본군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해 실상을 문서로 증언하기도 했다.

그는 생전 "나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지만, 지금 세계 각지에서 우리처럼 전시 성폭력 피해를 입고 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울 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여성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 뿐 아니라 전세계의 성폭력 피해자와 이재민, 전쟁 피해 아동 등을 돕는 데에도 앞장섰다.

2011년 3월에는 일본 동북부대지진 피해자 돕기 모금을 제안해 1호 기부를 했고, 2012년에는 정대협과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설립했고, 2015년 전쟁/무력분쟁지역 아이들의 장학금으로 5000만원을 기부했다. 2017년 8월에는 사후 남은 모든 재산을 기부하기로 약정하기도 했다.

 

 

 

생전 김복동 할머니 모습. /뉴스1 DB © News1 유승관 기자


2014년에는 베트남전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사죄와 함께 연대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당시 김 할머니는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한국 국민으로서 사죄드린다. 앞으로 커가는 후손들과 어린애들은 절대로 전쟁이 없도록 각국에서 힘을 써달라"고 말했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 시의회로부터 용감한 여성상을 받았고, 2015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을 받았다. 또 2017년에는 정의기억재단으로부터 여성인권상을 수상했고, 같은해 국제여성인권단체인 'Women's Initiatives for Gender Justice' '성평등 유산의 벽'에 선정됐다.

김 할머니의 빈소는 연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차려진다. 장례식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시민장'으로 치러지며, 조문은 29일 오전 11시부터 가능하다. 발인은 2월1일 예정이다.

한편 이날 오전 이모 할머니가 향년 94세로 별세한 데 이어 김복동 할머니도 숨을 거두면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3명만이 남게됐다.

 

 

 

뉴스1 <뉴스커넥트>를 통해 제공받은 컨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뉴스1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PO Box 100974 NSMC, Auckland New Zealand
TEL : 09)444-7444 Fax 09)444-7443 Email: article@sundaytimes.co.nz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용우
Copyright © 2019 뉴질랜드 선데이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