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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죽으면 좋겠다
선데이타임즈 | 승인 2018.12.19 08:59|조회수 : 416

100세인간(Human hundred)시대가 오고있다. 과연 100세가 되어서도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힘차고 의미 있게 살수 있을까? 육신도 정신도 흐려지고 생각을 잃어버린 개구리처럼 눈만 껌벅거리며 메트로놈처럼 숨만 쉬는 삶이라면, 그런 삶을 정녕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삶은 천년을 준다고 해도 사절이다. 삶의 열정도, 의미도 없이 그저 오래 숨쉬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목표인 듯 꿈틀대는 것은 자유롭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구속이며 저주 일지도 모른다.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고 평화롭게 죽는 것이 축복 아닐까.

 내 어머니는 여든 다섯에 세상을 등졌다. 세상 떠나기 전날까지도 당신의 내의는 손수 세탁해서 사용했다. 치매는 근처도 가보질 않았다. 내가 이민을 결정한 사실을 꼭꼭 감췄는데도 눈치로 알아챌 만큼 정신도 초롱초롱했다. 주름진 당신의 손으로 내 두 손을 감싸고 “가서 잘 살아라”며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내가 고국 떠나기 열흘 전 한가위 전날 밤, 조잔조잔 얘기를 나누고 잠자리에 든 후, 그대로 깨어나지 않고 고통없이 홀연히 세상을 떠나버렸다. 마치 너 떠나는 것 보기 힘들어 내가 먼저 떠난다는 듯. 자식에게서 받은 용돈 십만 원짜리 수표 한 장 남겨놓았을 뿐이었다. 평소 욕심 없는 곧은 삶으로 정리할 것 없던 내 어머니다운 떠남 이었다. 내 어머니의 죽음은 당신에게는 슬픔이 아닌 평화였다.

 친지들은 숨질 때까지도 축복 받았다고 했다. 당신이야 추레한 모습 보이지 않고 세상을 떠났으니 축복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견디기 힘들고 메워지지 않은 상처였다. 이 삼일 이라도 더 숨쉬며 일찍 지아비를 보내고 험한 세상 속에서 어둠, 슬픔, 외로움 이라는 삶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냈는지 속삭이고 안녕히 잘 가시라는 이별의 포옹이라도 나눴더라면, 가슴을 도려내는 헤어짐의 아픔은 덜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어머니는 세상사 다 부질없다는 듯 말없이 숨을 거뒀다.

 사람은 왔다가 가게 마련이다. 밀려가는 파도와 같은 것이다. 누구나 죽는다. 삶을 영유하고 싶어하는 그 누구도 죽음이라는 실체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언젠가는 살아 숨쉬는 모든 것들의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것이 자연의 질서다. 살아있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세상 떠날 날이 아득히 먼 훗날의 일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날은 빠르게 다가오고있다. 신에 의지해 영생을 믿는 사람이라 해도 인간의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누구도 다를 바 없이 햇빛에 스러지는 이슬처럼 흔적도 없이 흩어지는 거다. 삶과 죽음은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라고 하지 않은가.

 생명이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는 유기체일 뿐이다. 육체가 사라지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가 되는 것이다. 영혼이란 육체가 살아있는 동안 존재하는 의식일 뿐이다. 누구는 육신이 죽어지면 영혼이 천국으로 가기 위해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역설적이게도 육신이 사라지면 그것으로 완전한 소멸일 뿐이므로, 단 한번만 존재하기 때문에,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믿고있다.

 나도 반드시 죽는다. 세상 떠날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죽음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만은 명확하다. 내 어머니처럼 죽음을 품어 안듯이 추레함 없이 평온 속에서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에게도 원망 듣지않고 욕심 없는 나그네처럼, 갚을 것도 받을 것도 없는 홀가분한 몸뚱이로 그렇게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미소로서 맞이하는 죽음을 만나고 싶다. 아무것도 남기지않는 흔적 없는 바람처럼 조용히 떠나고 싶은 거다. 그런 ‘죽음의 축복’을 나는 갈망한다.

 이제는, 언제든 오시라고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한다. 하루하루를 더하고 뺄 것 없는 정리의 삶으로 살아야한다. 그래야 눈감고 돌아서는 숨결이 가벼울 거다. 사족이다. 나는 연명치료를 원치 않는다. 숨 거둔 몸뚱이는 화장하고 유골은 잘게 부숴 바람에 얹어주면 될 거다. 하나 더, 나는 다음 생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다음 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최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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