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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술이나 마셔야겠다
선데이타임즈 | 승인 2018.12.13 05:05|조회수 : 340

 내가 좋아하는 사람 중 김 선생이 있다. 나이는 나보다 대여섯 아랜 데 나는 꼰대 소리 듣기 싫어 나이에 관계치 않고 말 놓지않는다. 그도 60이 훨씬 넘었는데 그 나이에 나이 따지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그래서 그를 김 선생이라 부른다. 다만 ‘님’자까지 붙이 진 않는다. 그래도 나보다 어리니까… 하하하다.

김 선생은 내가 5년전에 테니스클럽에서 만난 테니스동호인이다. 그는 복식 게임을 하면 항상 클럽에서 제일 못 치는 영감을 파트너로 선택한다. 그리곤 영감이 포인트를 따면 환호성을 지르고 영감과 하이 파이브를 한다. 영감은 신이 난다. 친선이든 친목이든 게임을 하면 강한 파트너를 바라고 이기려고 억지를 쓰는데, 김 선생은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물론 승부에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전력을 다해 박살내버리기도 한다. 어줍잖은 내 판단으로 그의 테니스수준은 내가 속해있는 동호회에서 제1인자다. 그는 상대에 맞춰 적당히 게임을 내주기도 하면서 코트의 분위기를 조절한다. 웬만해서는 강한 서브를 넣지도 않는다. 그가 강한 서브를 넣으면 나같은 아마추어는 받기 쉽지않다. 나에게도 절대로 강한 서브를 넣지 않는다. 고맙지만 자존심도 상한다. 이것도 하하하다. 그러나 그 배려하는 인성에 난 그를 좋아한다.

지난 년초에도 여느 날처럼 게임을 했다. 그날 김 선생은 나와 반대편이었다. 헌데 게임을 하다가 판정때문에 내가 흥분하고 말았다. 뭔가 귀신이 씌웠던가 보다. 나는 어이없게도 많은 사람 앞에서 김 선생에게 불쾌하다는 표현을 거칠게 해 그의 ‘명예를 훼손’했다. 김 선생은 당혹스러워했다. 평소에 ‘게임은 즐기는 것’이라고 주장하던 내가 모순된 행동을 해버린 거다. 집으로 돌아온 차 속에서 참으로 부끄러웠다. 다음날 김 선생에게 진심으로 나의 행동을 사과했다. 김 선생은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가 사과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며 오히려 고개를 숙였다.

나는 아직도 한참 부족한 인간이란 걸 절감하면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지고 형편없는 ‘인간 그릇’이라는 느낌이었다. 세상을 부드러운 눈빛으로 관조해야 할 ‘나이든 사람’으로서 포용도 너그러움도 아우름도 부족한 나를 발견하고 너무 부끄럽고 한심하고 화가 나서 낮술을 마셨다.

 인간관계이론 중에 ‘노크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마음의 문을 열려면 먼저 노크하라는 거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 알려주라고 한다. 내가 먼저 솔직한 모습, 인간적인 모습,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면 상대방도 편안하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는 거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나는 김 선생에게 나의 망가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다행이 마음의 문을 열고 잘못함을 사과하는 솔직한 모습도 보여준 셈이 됐다. 김 선생은 그런 나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준 거다. 그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감싸는 배려의 마음으로 따뜻한 인간관계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인간관계이론 중에는 ‘거울의 법칙’이라는 것도 있다. 거울은 먼저 웃지않는다. 내가 웃어야만 거울 속의 내가 웃듯이 인간관계도 내가 먼저 웃어야 상대도 웃는다고 한다. 내가 먼저 관심을 갖고 공감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중요한 인간관계이론 이라는 거다. 나는 김 선생에게 별 것 아닌 일로 성질 내고 몽니를 부렸지만 김 선생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나를 포용해줬다.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지만 마음만은 한없이 편안했다.

 오래전에 ‘바르게 하라’는 내용으로 칼럼을 쓴 언론인이 소송을 당했다고 한다. ‘명예훼손’이란다. 세상에는 김 선생과(科)와는 정반대로 인간관계를 비웃으며 철저한 이기주의에 함몰된 종(種)들이 있다. 그들은 포용, 이해, 배려, 아우름 이라는 말들을 배워보지 못했다. 그들은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법으로만 해결한다는 소송원칙주의자들이다. 자신에게 불쾌한 행동을 하거나, 자신의 잘못된 언행을 지적하면 바로 소송이다. 그 널브러진 ‘명예훼손’이 그들의 금과옥조다. 돈 쫌 있다는 과시이기도하다. 이런 걸 돼먹지않은 인성이라고 하는 거다. ‘바르게 하라’는 글이 마땅치 않다고 소송을 하는 인간들이 무섭다. 낮술이나 마셔야겠다.

<최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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