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연재 최원규
무수리
선데이타임즈 | 승인 2018.11.15 07:39|조회수 : 348

궁중에서 잡역을 맡은 여자 종을 무수리 라 했다. 물긷기 불 때기 등 여러가지 허드렛일을 하는데 특히 물긷는 일을 주로 했다. 그래선지 무수리의 손은 늘 부르터 있었다.

어느 꽃샘추위 심한 봄날, 임금이 궁중을 거닐다가 물긷는 무수리를 보고 그녀의 부르튼 손이 안타까워 토닥거려줬다. 그날 이후 그 무수리는 임금이 잡아줬던 손을 무명천으로 감싸고 씻지도 않고 사용하지도 않고 일생을 보냈다. 실록에 기록된 사실인지 극작가가 꾸며낸 러브스토리인지 모르겠지만, 절대권력자를 향한 맹목적인 숭배에 대한 가슴 저리고 서글픈 이야기다.

 고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뉴질랜드를 비공식으로 방문한다고 한다. 11월30일부터 12월1일까지 남아메리카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G20정상회담에 참석한 뒤 귀국길에 뉴질랜드를 경유한다는 소식이다. 대통령 전용기가 아르헨티나에서 한국까지 운항하는데 중간 급유가 필요한 상황에서 중간 기착지가 오클랜드로 선택됐고, 현지에 머무르는 동안 동포간담회 등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동포간담회에 교민 150여명이 참석할 것이라는 확인되지않은 소식도 있다. 어찌됐건, 사람 사는 세상과 적폐 청산을 공언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추진하는 ‘촛불 대통령’이 교민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할 시간을 갖는 다니 설레고 뿌듯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내가 뉴질랜드에 이민 온후 세 사람의 고국 대통령이 오클랜드를 방문했다. 1999년에 김대중 대통령, 2006년에 노무현 대통령, 2009년에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방문 때는 동포간담회에 부름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는 동포간담회에 초청을 받았다. 추측하건대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이 방문 했을 때 주최측에 뭔가 예쁘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때 방문한 대통령으로부터 무슨 말을 들었는지, 교민사회에 도움될 어떤 건의나 특별 행사가 있었는지 기억에 없다. 솔직히 말하면 초청받았다는 것만으로 우쭐댔던 거다. 참으로 부끄러운 얘기지만, 대통령과 함께하는 동포간담회에 초청받으면 뭔 대단한 벼슬자리라도 얻은 것처럼 시 건방을 떨었다. 요즘이야 대통령 아니라 대통령 할배하고 포옹을 해도 시골마을 장터사진관에 진열돼 있는 인물 풍경 정도로 여기지만,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이 오클랜드를 방문할 당시만 해도 대통령과 포옹은 꿈같은 얘기고 같은 공간에 서있기만해도 영광이었다. 냉전시대의 산물인, 지금은 집권당의 해외 조직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당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소속 인물들은 고국에 초청돼 천편일률적으로 대통령과 악수하는 장면을 연출했는데, 대다수가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진을 가보 모시듯이 거실에 걸어두고 으쓱댔다.

 이명박 대통령이 방문 했을 때다. 무슨 소린 지도 모를 대통령 연설 듣고, 잘 짜인 각본대로 교민 요구사항 발표 끝나고 대통령은 앞자리에 앉은 교민들과 악수를 끝으로 자리를 떴다. 그때는 앞자리에 앉을 사람은 주최측에서 일방적으로 정했다. 어디가 주최측인지 모르지만, 주최측에 예쁘게 보여야 앞자리에 배정된다는 소문이 파다 했었다. 이 대통령이 떠나자 앞자리에 앉아있던, 평소 나에게 호형하던 녀석이 내 앞으로 와 흥분해 말투까지 더듬거리며 감격해 했다. “형님! 이명박 대통령이 내 어깨를 쳤어! 이번 행사준비에 내가 많은 지원을 했다고 총영사가 소개 하니까, 이 대통령이 당신이 그랬어? 하면서 내 어깨를 토닥거려 주더라고!” 그때 내가 그랬다. “그 어깨 씻지 말고 무명천으로 감싸라~”

 문재인 대통령의 동포간담회에 참석하고 싶은 교민들의 신청을 받고있다는 소식이다. 그저 심심한 자기들끼리 모여 만든 친목 모임에 불과한 단체장을 초청중심으로 삼았던, 말도 안되는 전례를 답습하지 않는다니 참으로 바르고 기분 좋은 소식이다. 문 대통령의 동포간담회에 참석하는 교민들은 절대권력자를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무수리가 아니길 바란다. 욕심 같으면, 삶의 자세가 구태 스럽지않고, 비굴하지 않고, 창조적이며, 곧고, 당당한 4~50대의 교민들이 간담회자리를 가득 채우면 좋겠다. <최원규>         

선데이타임즈  article@sundaytimes.co.nz

<저작권자 © 뉴질랜드 선데이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PO Box 100974 NSMC, Auckland New Zealand
TEL : 09)444-7444 Fax 09)444-7443 Email: article@sundaytimes.co.nz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용우
Copyright © 2019 뉴질랜드 선데이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