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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의 도덕성
선데이타임즈 | 승인 2018.11.08 05:49|조회수 : 240

올해 초 새해 벽두부터 터져 나온 현직 여 검사의 상사에 의한 성폭력 폭로는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입을 닫고있어서 그렇지 여성에 대한 권력자들의 성폭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여러 형태의 갑질 중 하나임을 사람들은 짐작하고있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수면위로 올라오자 세상이 예상외로 거세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끝없이 밀려오는 산더미 같은 무서운 파도였다. 

 페미니스트들의 외침으로 시작된 미투(#Me Too)는 여성인권운동으로 모습을 바꾸면서 들불처럼 번져갔다. 그녀들에 의해 적폐의 대상으로 지적된 ‘그들’은 폐가망신으로 완전히 정신적인 진공상태가 됐다. 온 사회를 쓰나미처럼 뒤덮은 성폭력은 ‘그들’만의 ‘가벼운 유희’였었다. 그 가벼운 유희가 이렇게 커다란 사회문제로 증폭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못했다.

성폭력의 피해자는 분노와 수치심을 감추며 애써 무심하려 했다. 어쩌다 용기 있는 폭로를 해봐야 전혀 사회적인 이슈거리가 되지못했다. 하지만 이젠 성폭력은 이슈 차원이 아니라 인생의 파멸이다. 그러자 이런 분위기를 틈타 사갈처럼 꿈틀대는 것이 있다. 뭔가 꺼림하고 개운치 않은 성폭력피해자의 등장이다. 더불어 성폭력피의자는 무조건 남성이라는 프레임으로 굳어지고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젠더(Gender)프레임에 대한 사회적 가치관과 정체성의 변곡점이라는 주장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한 대형쇼핑몰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던 8살된 사내아이가 앞을 향해 손을 뻗었다. 헌데 그 손이 공교롭게도 앞에 서있는 한 여성의 엉덩이에 닿았다. 그 여성은 신경질적으로 아이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아이를 향해 “나쁜 자식!”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를 본 아이엄마가 “아이가 엄마로 착각해서 그런 것인데 왜 야단을 하느냐”고 항의했다. 말다툼이 커지면서 동행한 가족까지 합세해 여성 4명이 서로의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난투극을 벌였다. 일부 목격자가 이 장면을 촬영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면서 온라인에서는 ‘누구의 잘못이냐’를 놓고 찬반논란이 팽팽했다. ‘아이가 뭐를 알겠는가, 웃고 넘어갈 일’이라며 그 여성의 주관적인 과민반응에 반대하는 시각과, ‘아무리 어려도 엄연한 성추행이다’는 시각이 맞섰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여성의 엉덩이에 손이 닿은 어린아이가 여자아이였다면 이 여성이 그렇게 과민하게 반응했을까? 모르긴 해도 이 여성은 그런 여자아이를 귀엽다고 머리를 쓰다듬었을 지도 모른다. 이 어린 사내아이는 성폭력행위자라면 거의 자동적으로 남성을 떠올리는 젠더프레임의 희생물이 된 게 아닐까?

 이제 한국남성들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가 아니라 ‘여성 보기를 돌같이’해야할 것 같다. 여성의 엉덩이 한번 잘못 스쳤다가 사회적으로 완전하게 매장될 수 있는 작금의 상황에 공포감까지 느낀다. 일상 속 의미 없는 행동에도 민감해지는 사회를 보면서 ‘미투운동’이 종착점 없는 폭주기관차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성폭력의 한계점이 대체 어느 지점까지 인지 불안스럽다. 성폭력문제로 거론되면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사실이든 아니든 혐의자는 사회적 도덕적 매장이다. 수십년을 쌓아온 명성이 하루 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진실로 도덕적인 적폐를 청산하고, 젠더프레임에 대한 사회적 가치관을 정립하고, 여성인권을 평등하게 보장하는 운동이여야 할 미투운동의 본질이 퇴색될 것 같은 불안함이 고개를 내밀고 있음을 감출 수 없다.

 오해하지는 마시라. 성폭력행위자들을 변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나는 그런 자들은 청소돼야 마땅한 쓰레기들로 경멸한다. 다만 순수해야 할 여성인권운동을 도덕적으로 악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도식적인 젠더프레임에 갇혀 뚜렷한 증거도 없이 주관적인 판단으로 인격 살인을 하며 한풀이하는 기회로 삼지 말라는 말이다. 한 인간의 귀중한 세상을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파괴해버리는 것이 수긍할 수 있는 도덕인지는 깊은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기준으로 상황을 판단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기준이 지극히 주관적이고 이기적이면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의 광풍에 휩싸일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최원규>

선데이타임즈  article@sundaytimes.co.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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