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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벽과 집착
선데이타임즈 | 승인 2018.02.01 09:50|조회수 : 271

인간을 망가뜨리는 요소가 몇가지 있는데, 그 중에서 결정적인 것이 욕심이라고 한다.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사자성어도 과도한 욕심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백과사전에는 ‘욕심(慾心)의 한자를 보면 ‘慾’자는 바랄 욕(欲)자 아래 마음 심(心)자가 있는 형태이다. 따라서 욕심이란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 얻고자 하는 마음을 뜻한다’고 돼있다. 하지만 욕심이라는 뜻에는 이미 지나침 이라는 의미가 내재돼 있는 거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바라고 얻고자 하는 마음이야 당연하다. 다만 이것이 지나칠 때 문제가 되는 거다. 지나치다는 의미는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이라는 뜻이다. 어느 작가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양심이다’고 했다. 그런데 지나침은 그렇게 무섭다는 양심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외면해버리거나 무시해버리기 때문에 경계해야 될 하나의 무거운 명제가 되는 거다. 이 지나침으로 인하여 가정이, 조직이, 사회가, 국가가 휘청거린다면, 이거야 말로 부당하고 증오 받고 저주받고 단죄 받아야할 가장 무서운 테제가 된다.

그는 자서전<신화는 없다>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굴껍데기처럼 우리 대가족에 달라붙은 가난, 노점 일이 너무나도 부끄러워서 궁리 끝에 밀집모자를 구해 푹 눌러쓰고 쌀을 튀겼다. (중략) 내가 안고 있는 것은 금고가 아니라 나의 자존심이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금고를 끌어안았다.”

그는 가난하고 차가운 세상을 넘어가는 사다리에 오르기 위해 성난노동자의 틈바구니에서 칼을 맞으며 회사의 금고를 지켰고, 목숨 걸고 자기 재산을 지켜준 태도에 감동 먹은 사주는 그를 승승장구 시켰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대기업의 회장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끝 모를 욕심을 실현하기 위해 국회의원이 되고, 서울특별시장이 되고, 마침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됐다.

그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선택해 달라며 서민이 즐기는 국밥코스프레를 연출하면서 서민 임을 강조했다. 자신은 법정스님의 글 ‘무소유’가 가장 감명 깊으며, 자신의 삶의 철학과도 일치한다고 열변을 토하며 욕심 없음을 자랑했다. 자신에게는 병적으로 깨끗한 것에 집착하는 결벽증이 있다고 결벽도 호소했다. 그러면서 서민들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큰소리를 쳤었다.

대통령임기를 다한 그가, 무소유와 결벽과 국밥을 좋아하는 서민 임을 떠벌리던 그가, 전방위로 전개되는 검찰수사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코스프레인생의 껍데기가 벗겨지고 있다. BBK 140억원 회수, 차명으로 매입 해놓은 사방에 널려있는 광대한 토지, 대가족과 얽힌 다스, 요상한 청계재단,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 등등, 무소유와 결벽과는 거리가 먼 불법과 위선과 위장으로 축적해 놓은 재산은 서민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어마어마한 산더미였다. 그의 재산 축적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병적이었다. 그는 정권이 아니라 이권을 잡았던 건가. 그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져버렸다.

그는 15여년을 충성하며 자신을 보좌한 비서관이며 동지였던 사람을 이용 시한이 끝나자 뒤도 돌아보지않고 내쳤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서관 아내의 영전에 흰 국화꽃 한 송이조차 외면한 냉혈 동물이었다. 사람들이 알고있는, 사람들이 본 그의 모습은 철저하게 숨겨진 껍데기였을 뿐이었다. 그는 음침한 이중인격 자 인가? 천사의 탈을 쓴 사탄인가?

무섭다는 양심을 개똥 쳐다보듯 멀뚱거리며 얼굴표정하나 변하지 않는 그는 숱한 의혹들에 대해 진실을 감추면서 ‘모르쇠’로 버티고있다. 딜레마에 빠졌다. 이런 인물이 국민을 대표하는 최고의 지도자라는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 창피하고 분통터진다.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율리우스 시저(Jules Cesar)’에서 말했다.

“비천한 지위는 야심찬 젊은이의 사다리, 출세하려는 자는 그 끝만 올려다보지. 그러나 높은 곳에 올라서면 이내 사다리에 등을 돌리고 다시 구름을 올려다보지. 지금까지 올라온 아래쪽은 경멸하면서.”

 인간을 무너뜨리는 것은 운명이 아니라 가면의 결벽과 지나친 욕심과 집착이다. <최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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